자유게시판
작성자 치우정
작성일 2014-03-10 (월) 00:05
분 류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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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18.xxx.167
군포시 속달동 정난종 묘소

{아래글은 정하선(32세 창원공파 중 관수공 후손)님의 글을 이기한 것임}



정난종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국형(國馨), 호는 허백당(虛白堂). 아버지는 진주목사 사(賜)이다.

1456년(세조 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대교·감찰·이조좌랑 등을 지냈다.

1466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동부승지가 되고 좌부승지·예조참판을 거쳤다.

그뒤 등준시(登俊試)에 급제, 형조참판으로 오위장(五衛將)을 겸했다.

 1467년 황해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듬해 호조참판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동지춘추관사로서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1470년(성종 1) 동지중추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동래군(東萊君)에 봉해졌다.

그뒤 영안도관찰사·한성부판윤·우참찬·이조판서·공조판서·호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훈구파의 중진으로 성리학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초서와 예서를 잘 썼고 조맹부체에 뛰어났다.

 그가 남긴 금석문으로는 탑골 공원의 〈원각사비음 圓覺寺碑陰〉,

양주의 〈고령부원군신숙주묘표 高靈府院君申叔舟墓表〉,

양양의 〈낙산사종명 洛山寺鐘銘〉,

고성의 〈유점사종명 楡岾寺鍾銘〉,

덕수궁의 〈흥천사종명 興天寺鐘銘〉 등이 있다.

〈관란정첩 觀瀾亭帖〉·〈해동명적 海東名跡〉·

〈대동서법 大東書法〉 등에 그의 글씨가 모각되어 있다.

시호는 익혜(翼惠)이다.


 


 


 


 


 오른쪽 정하선님


 

 

逆葬의 明堂 鄭蘭宗 묘역
위치 : 군포시 속달동 산3-1

나의 스승이신 정암 김종철 선생님께서는

을 모르면 산진처에 묘를 쓰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혈은 산의 꽃이고 열매이니 龍의 끝에 과일이 맺힌다는 논리이다.

여기서 산진처란 산의 능선이 끝나는산과 밭의 경계 D가 아니라

능선의 끝 부분 C에 쓰라는 말씀하셨다  

                
실제로 조선의 왕릉을 보면 효종의 寧陵과 순종의 裕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산의 끝 부분 능선에조성되어 있다. 

또한 큰 발복을 한 이석형, 김성우, 김반 등의 묘들을 볼 것 같으면

줄기 끝에 동그랗게 과일이 열리듯 쓰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A와 B는 過龍이고 騎龍이며 行龍인 것이니,

기의 머물음이 없다는 뜻이다.물론 A와 B의 지점에서 기의 흐름을

단속하는 界水則地와 같은 증거가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좌로부터 이석형, 김성우, 김반 묘소>
                               이전에 동래정씨 문중의 장구한 발복을 추적하던 중,

소문만 요란한 예천 지보리의 鄭 賜 묘를 둘러보고

큰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기에 오늘은 鄭 賜의 3남인 허백당 정난종 묘소를 둘러본다.
먼저 수리산 남쪽에 자리한 묘역의 입구에서 보면
주봉에서 A B 두 개의 능선으로

갈라지는 것이보인다. 그런데 A의 능선은 크고 길게 이루어졌으며,

 B는 짧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르기도 전에

B의 묘역이 정룡이 아닌 곁가지에 쓰여 진 곳이기 때문에 小地라고 말한다. 
 

용의 크고 작음과 길고 짧음만을 따지는 매우 단순한 판단이 아닐 수 없는데,

막상 A의 능선을 올라보면 산의 변화가 전혀 없으며

곳곳이 갈라지고 찢어져 추한 형상을 하고 있다.
반면에 B는 비록 가냘픈 듯 보이지만 많은 가지를 생성하면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이 嫩龍이며 生龍인 것이다.

즉 A로 간 것이 호종사인 것이고 B가 正龍이며 本身龍인 것이다.

갈림길에서부터 맥의 주종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이다
이곳 묘역에서의 특징은 좌향을 정함에 있어
그 어떠한 공식적인 법수에 구애됨 없이

오로지 기맥의 흐름 따라 자연스럽게 쓰여져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패철에 목숨 걸고 틀에 박힌 공식에 연연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장소라 하겠다 


 

한편 이곳의 용의 흐름은 시계방향으로 흐르는 좌선룡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내수 또한 左旋水이니 이를 일러 山水同去라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지세지만, 이 또한 전혀 거리낌 없이 정하였다.

당시의 조선초기에는 하륜의 영향으로 이기론 술법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였음에도,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속박을 초월하여 오직 형세에 순응하며 몸을 맡기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식과 손주의 묘소가 
 祖父 묘의 위쪽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를 일러 사람들은 불효 막급한 역장이며

집안이 뒤집어지는 亂藏이라며 호통치지만, 과연 누가 대학자였던 정난종 가문을

무례한 가문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역장임에도 수많은 정승 판서를 배

출한 것은 어찌 설명하겠는가? 

 



참고로

율곡 이이, 월사 이정구, 사계 김장생, 우계 성혼 등 같이

 위대한 선현들도 이와 같은 역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가문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만약 조상의 혼백이 있다면

어느 조상이 자식과 손주가 할아버지 머리맡에서 재롱부리는 것을 싫어하겠는가?
설사 자신보다 후손들이 좋은 땅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후손들을 시기하고 미워하겠는가?
요즈음은 대체로 가까운 친인척들이 극구 반대하는데,
아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과 같은 연유일 것이다. 옛 선인들의 효심과 적극적인 땅의 활용을 새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이곳 묘역을 최초로 자리한 사람은 鄭蘭宗이다.

그런데 긴 능선 중에서 가장 끝부분을 취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면 후련한 풍광으로 우뚝할 수 있음에도 굳이 맨 아래를 선택한 것은

용세의 흐름과 멈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위에서부터 좌측으로 3개의 가지를 뻗으면서 균형을 잡으며 급하게

달려온 용은 山盡處에 이르비로소 완만하게 머물고 있다.  이 말은 위쪽에는 산의

경사가 급해서 기의 머물음이 없는 곳이고 정난종 묘소에 이르러 평탄하게 멈추어

氣가 응집된 곳임을 말해 주는 것이니, 애초에 그곳 능선에서 최적의 땅을 선점한 것이다.
古云 : 壟龍遇平有結 (경사진 龍이 평평한 곳을 만나면 혈을 맺음이다)
그 이후로 효성스런 자식들이 터가 다소
부족해도 부모의 곁에 있기를 원하다보니

역장의 형태가 된 것이다. 


 

동래정씨는 17명의 정승을 배출하는데 그 중에서도 정난종의 후손에서만

13명의 정승을 배출하여 단일 가문에서는 최다 정승을 배출하였다.  

정문도--정귀령--정 사 묘부터 시작된 동래정씨 발복의 오랜 추적은

이곳 정난종 묘소에서 일단락을 지을 수 있었는데, 맥의 진행과 용세의 흐름,

그리고 기의 머물음까지를 고려한 형세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

이라 할 수 있다. 아래 표를 보면 정난종 고손까지는 묘의 음덕이라 이해할 수 있으나,

 하나의 혈에서 이토록 장구한 월 발복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니,

아마도 또 다른 요인이 있을지 모르겠다.

허백당

정난종

판 서

2남

정광필

영의정

曾孫

정유길

좌의정

高孫

정지연

정창연

우의정

좌의정

6세손

정태화

정치화

정지화

영의정

좌의정

좌의정

7세손

정재숭

좌의정

9세손

정석오

좌의정

10세손

정홍순

우의정

11세손

정존겸

영의정

12세손

정원용

영의정

14세손

정범조

좌의정




 


 


 


 좌측 첫번째 정운필(동래군종친회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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